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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사 타절정산과 계약이행보증금 청구의 법적 한계

2026-06-16


공사 현장에서는 공정 지연이나 공사비 증액, 시공 문제 등으로 인해 도급인과 수급인이 계약을 중도에 종료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흔히 ‘타절정산’을 통해 기성 부분과 정산금액을 정리하고 계약관계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타절정산 이후에도 계약이행보증금이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지를 둘러싼 분쟁이 반복되고 있다. 대법원 2013다8755 판결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사례다.


사건은 교회 신축공사 도중 수급인이 공사포기 각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도급인과 수급인은 공사포기에 따른 타절정산에 합의했고, 사실상 공사계약 관계를 종료했다. 문제는 계약 종료 이후 도급인이 계약이행보증금을 청구하면서 발생했다.


도급인은 계약서에 규정된 “수급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이행보증금은 도급인에게 귀속한다”는 조항과 보증위탁계약 내용을 근거로 보증인에게 계약이행보증금 지급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보증인은 계약관계가 합의에 의해 종료된 이상 보증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원심은 도급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공사포기와 타절정산이 합의해지에 해당하더라도 도급인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으며, 적어도 손해배상청구권을 유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계약이 합의에 의해 해제 또는 해지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기존 법리를 다시 확인했다. 당사자들이 합의해지를 선택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기존 계약관계와 관련된 책임 문제까지 함께 정리하려는 의사가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따라서 합의해지 이후에도 손해배상청구권을 유지하려면 별도의 특약이 있거나 손해배상청구권을 유보한다는 의사표시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손해배상을 주장하는 당사자에게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도 도급인이 손해배상청구권을 유보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원심이 근거로 제시한 과거 다른 계약 사례나 공사 지연 사정 등은 이 사건 합의 당시 손해배상청구권 유보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이 판결의 의미는 계약이행보증금의 법적 성격과도 연결된다. 대법원은 계약이행보증금을 독립적인 제재수단으로 보기보다 수급인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채무를 담보하는 보증으로 파악했다. 다시 말해 기초가 되는 손해배상채무가 존재해야 보증인의 책임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결국 합의해지로 인해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거나 제한된다면 계약이행보증금 청구 역시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계약이행보증금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권리가 아니라 손해배상채무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권리임을 보여준다.


실무적으로는 타절정산 과정에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현장에서는 공사 중단에 따른 정산금액과 기성고 산정에 집중한 나머지 손해배상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이러한 경우 추후 계약이행보증금이나 지체상금, 손해배상 청구가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도급인이 수급인의 공사 지연이나 계약 위반에 대한 책임을 계속 묻고자 한다면 타절합의서에 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손해배상청구권을 유보한다는 문구나 계약이행보증금·지체상금 조항의 효력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


보증약관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보증계약에서 계약 해제 또는 해지를 보험금 지급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더라도, 그 해지가 합의해지라면 손해배상청구권 자체가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증금 청구를 위한 전제가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대법원 2013다8755 판결은 공사 타절정산과 계약이행보증금 청구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한 사례로 합의해지는 단순히 계약을 종료하는 절차가 아니라 손해배상 책임의 존속 여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도급인과 수급인 모두 타절정산 과정에서 향후 권리관계까지 충분히 검토한 뒤 합의 내용을 문서로 남길 필요가 있다.


계약 종료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손해배상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을 경우, 이후 예상했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최승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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