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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일보]
[최승준 변호사의 건설법률 상식-14]정비사업 조합장·임원 책임과 형사 리스크
2026-02-23
|최승준 성지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정비사업 조합장·임원은 한편으로는 주민 대표이자 사업의 추진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고 각종 계약을 체결하는 ‘준(準)공적’ 주체로서 강한 형사적 통제의 대상이 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과 형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이 촘촘하게 얽혀 있어, 조합장·임원이 ‘조합을 위해 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행위가 배임, 횡령, 도시정비법 위반, 뇌물수수 등으로 비화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정비사업에서 조합장·임원의 형사 리스크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들의 법적 지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조합은 ‘도시정비법’ 상 법인으로, 조합장·임원은 조합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서 형법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조합의 자금을 관리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로 조합에 손해를 가하면 업무상 배임·횡령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도시정비법은 총회 의결사항을 위반해 임의로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 임원을 별도의 처벌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단순한 민·상사법상의 책임을 넘어 형사책임까지 예정하고 있다.
도시정비법의 벌칙 구조는 조합장·임원에게 “절차를 지키는 것 자체가 형사 리스크 관리”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예컨대 도시정비법 제24조 제3항은 조합 임원의 선임·해임, 시공사 선정, 사업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의 인가 신청 등 조합원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총회 의결사항으로 규정하고, 제85조 제5호는 이와 같은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사업을 추진한 조합 임원을 형사처벌 하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은 여기서 말하는 “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아니하고”의 의미를 형식적 의결 여부를 넘어 그 의결의 유효성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 총회 결의가 부존재·무효이면 사실상 의결 없이 사업을 추진한 것과 같다고 본다. 이는 조합장·임원이 의결 절차를 형식적으로만 갖추는 수준을 넘어, 의결 과정의 적법성과 투명성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이어진다.
업무상 횡령·배임은 정비사업 조합장·임원이 실제로 가장 자주 마주하는 형사 리스크다. 조합 자금 집행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조합장 개인의 급여·활동비, 각종 용역비, 시공사와의 정산 과정 등 여러 지점에서 횡령·배임 시비가 발생한다.
예컨대 조합 명의의 통장과 인감, 체크카드를 시공사나 공동시행사에게 넘겨 사실상 자금 집행 권한을 포기한 사례에서, 법원은 조합장이 자금관리 의무를 저버려 조합에 손해를 입혔다고 보아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했다. 또 조합이 부담할 의무가 없는 용역비를 ‘짜고 치는 소송’을 통해 일부러 패소함으로써 조합 자금 2억5,000만 원을 외부로 유출한 사건에서도, 조합장과 용역업체 대표 모두 업무상 배임 유죄가 인정됐다.
흥미로운 점은 조합장이 “사업을 빨리 추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거나 “결국 조합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해도 형사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법원은 배임죄에서 ‘본인에 대한 임무위배’와 ‘재산상 손해 발생’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가 조합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이었더라도, 객관적으로 보면 부당한 자금 유출·위험부담을 초래했다면 배임이 된다고 본다.
다만 조합장에게 광범위한 재량 범위가 인정되는 영역에서 단순한 경영상 판단의 실패에 불과하고, 합리적 대안 검토와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 경우에는 배임을 부정하는 판결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경계선은 상당히 미묘하게 갈린다.
조합임원 선출 과정에서의 금품·향응 제공 역시 최근 강하게 문제되는 형사 리스크다.
도시정비법은 조합 임원 후보자가 선출과 관련해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거나 제공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조합 임원 선거와 관련한 금품수수 금지 규정에 대해, 정비사업이라는 대규모 개발사업의 공공성과 사업 규모, 조합의사결정의 공정성·투명성 확보 필요성을 고려할 때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 아니라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조합 임원은 한 번 선임되면 조합 자금, 시공사 선정, 사업계획 변경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므로, 선출 단계에서부터 금권 선거를 엄하게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실무에서는 “식사 한 번 대접한 것 가지고도 처벌되느냐”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조합장 선출 임시총회 전날 선거관리위원장·위원과 조합원들에게 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일부 비용(14만 원)을 결제한 행위를, 조합임원 선출과 관련한 금품·향응 제공으로 보아 도시정비법 위반 유죄를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제공 금액이 크지 않고 전통적 관행에 불과하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선거관리위원과 조합원이라는 이해관계자에게 제공된 점, 시기·경위 등을 고려할 때 선거 관련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 판결은 정비사업 조합장·임원 선거에서 통상적인 ‘인사차 식사’ 수준이라도 형사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조합장·임원의 형사 리스크는 단지 ‘실형을 선고받을 위험’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정비법은 일정한 형사처벌 전력을 조합 임원 결격사유로 규정해,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확정되면 임원 지위를 상실하거나 향후 임원 취임이 제한되는 효과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거나, 업무상 횡령·배임죄로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으면 조합장 지위를 잃게 되고, 그 공백은 사업 지연·추가 분쟁으로 직결된다. 단지 ‘벌금 정도’로 끝났다고 안도하기 어렵고, 직무 상실·재선출·총회 소집 등 후속 절차에서 또 다른 법적·정치적 갈등이 불거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조합장·임원 입장에서 형사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첫째, 총회 및 이사회 의결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고, 의결 과정과 내용, 설명 경위 등을 꼼꼼히 문서화해 둬야 한다. 총회 소집 통지, 의안 상정, 의사록 작성, 위임장·서면결의서 관리, 이해관계인 배제 여부 등 기초 절차를 소홀히 하면, 사후에 결의 무효·부존재가 다퉈지고 그와 연동된 도시정비법 위반·배임 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
둘째, 조합 자금 집행과 관련해서는 지급 근거, 계약서, 세부 내역을 남기고, 가능하면 집행 전 이사회·총회 보고를 통해 ‘공개된 의사결정’의 형식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시공사·용역사와의 정산에서 조합이 부담할 의무가 있는지 애매한 비용에 대해 단독으로 합의·지급하는 것은 회피해야 한다.
셋째, 임원 선출과 관련된 모든 접촉·편의 제공은 극도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선거관리위원·조합원과의 식사, 선물, 교통편 제공 등이 임원 선출과 시간적으로·인적으로 결부돼 있다면, 사소해 보이는 금액이라도 수사·재판 단계에서 문제될 수 있다.
넷째, 시공사·신탁사·자문사 등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서 ‘사적 이익’을 취했다는 의심을 받을 만한 행위를 피해야 한다. 향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나 배임수재 혐의로 확장될 위험이 있고, 한 번 수사가 개시되면 과거의 자금 흐름과 접촉 내역까지 전면적으로 조사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결국 정비사업 조합장·임원의 형사 리스크는 법 조문 몇 개를 외운다고 해서 관리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대규모 개발이익과 주민 이해관계가 얽힌 구조 속에서, 조합장·임원은 언제든지 수사기관·감독기관·조합원들의 감시 대상이 된다. 절차를 지키고, 이해상충을 관리하며, 의사결정을 문서화하는 ‘지루한 기본기’가 형사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나아가 조합 내부에 초기 단계부터 법률 자문 시스템을 구축하고, 중대한 의사결정마다 외부 전문가의 검토를 거치는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조합장·임원 리스크’는 예외적 사건으로 머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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