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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일보]
[최승준 변호사의 건설법률 상식-21] 공공 재개발·공공 재건축에서 공공과 민간의 역할
2026-04-13
|최승준 성지파트너스 대표변호사

도시정비사업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민간 주도의 재개발·재건축이 도시의 재생을 견인해 왔지만, 최근에는 공공성을 강화한 ‘공공 재개발’과 ‘공공 재건축’이 도시계획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주거 환경의 질적 개선과 주택 공급 확대라는 정책적 과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존의 정비방식에 실효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규제의 틀과 사업의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공공 재개발·공공 재건축은 근본적으로 ‘공공의 참여를 통한 사업 활성화’라는 명제 위에 서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개입이 아니라, 사업 추진의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접근이다.
기존의 민간 재개발이 조합 중심으로 진행되며 사업성 확보에 방점을 두었다면, 공공방식은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공공기관이 적극 개입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공공기여 및 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사회적 균형을 추구한다. 특히 토지이용계획 변경, 용적률 상향, 기반시설 설치 등에 있어 공공의 권한이 결집되면서 사업은 속도감 있는 진행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공공이 사업 주체로 전면에 나서는 순간, 사업은 단순한 건축 행위가 아닌 정책 집행의 성격을 띠게 된다. 공공의 목적 달성이라는 명분 아래, 경제적 효율이 후순위로 밀릴 위험도 존재한다.
재개발·재건축은 본질적으로 다수 이해관계자가 얽힌 복합적 사업이다. 토지소유자, 조합, 시공사, 금융기관, 세입자 등 각 주체의 이해가 상충하는 가운데, 공공의 개입은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규제자로 작용한다.
공공은 사업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필수적이지만, 민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지나치게 제약할 경우 사업이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결국 ‘공공이 어느 선까지 개입할 것인가’가 제도의 성패를 좌우한다.
공공재개발의 장점은 분명하다. 첫째, 사업 추진 과정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토계획법·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상 각종 인허가가 공공의 일괄 절차로 묶이면서 조합 설립 이후 수년씩 걸리던 사업 승인 과정이 단축된다.
둘째, 공공이 확보한 개발이익의 일부를 임대주택이나 기반시설에 환원함으로써 도시재생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할 수 있다.
셋째, 사업 참여자 간 신뢰를 높일 수 있다. 공공기관이 조합 운영을 지원하거나 사업비 조달을 보증할 경우, 시민의 체감 신뢰도는 과거보다 높아진다. 이는 재개발 사업의 ‘투명한 실행 모델’을 확립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공공이 개입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일부 공공재개발 구역에서는 공공의 관여가 오히려 의사결정을 경직시키고, 사업지 주민들과의 소통을 어렵게 만든 사례도 있다. 민간조합이 스스로 선호하는 설계방식이나 시공업체를 선택할 자유가 줄어들면서, 사업 추진의 ‘유연성’이 사라진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공공이 일정 수준의 사업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면, 민간은 실패의 책임을 떠안은 채 참여를 꺼릴 수 있다. 사업의 속도와 효율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명확히 정의되어야 한다. 공공이 단순한 ‘행정 지원자’인지, 혹은 ‘사업 주체’인지에 따라 법적 책임의 무게도 달라진다.
민간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무리 공공이 제도적 틀을 마련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민간의 전문성과 실행력이 필수적이다. 자금조달, 시공기술, 시장 분석 등에서 민간은 공공보다 훨씬 유연하고 효율적이다.
따라서 공공은 민간이 활약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을 열어주고, 민간은 공공의 목표를 이해하며 조화로운 협력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민간참여형 공공재개발 모델’은 바로 이러한 균형 감각을 반영한다. 공공이 정비구역 지정과 인허가 절차를 지원하는 대신, 민간이 사업비 부담과 건축 설계의 주도권을 유지한다. 양자가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조정하는 구조가 현실적 해법이다.
또한 법적 측면에서, 공공재개발은 각종 행정행위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 인가, 공공참여 계약체결 등은 각각의 법적 근거와 효과가 다르다. 특히 공공기관이 사업시행자로 참여하는 경우, 그 법적 지위가 ‘행정주체’인지 ‘사법상의 당사자’인지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향후 분쟁 시 책임소재를 규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공의 권한과 의무를 명시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사업의 공공성과 법적 안정성이 양립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법적 구조가 필수적이다.
장기적으로 공공재개발·공공재건축은 도시 공간의 공익적 가치 회복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무분별한 고밀도 재건축이나 투기성 분양 문화를 제어하고, 실수요자 중심의 주거 공급을 유도하는 점에서 정책적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전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주도’가 곧 ‘공공의 독점’이 돼서는 안 된다.
공공이 원칙을 세우고 제도를 정비하되, 실행 단계에서는 민간의 혁신과 시장의 역동성을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이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이 속도를 내는, 이른바 ‘공공-민간 협력형 거버넌스’가 가장 실질적인 운영모델이다.
결국 공공 재개발·공공 재건축의 핵심은 ‘신뢰’다. 공공은 민간의 이익 추구를 부정하지 않고, 민간은 공공의 사회적 책무를 존중해야 한다. 서로 다른 목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수단으로 같은 사회적 결과를 지향할 때, 도시정비사업은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을 구현할 수 있다.
정부가 직접 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제도를 설계하고 역할을 조정하는 ‘규범의 관리자’로서 기능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다. 민간은 그 틀 안에서 창의적 경쟁을 펼치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실질적 공간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
오늘날 도시정비사업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문제를 넘어, 도시의 기억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복합적 과제이다. 공공은 이러한 가치 판단의 중심에서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고, 민간은 그 기준을 현실로 구현하는 엔진 역할을 담당한다.
공공과 민간이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고 서로의 존재를 존중할 때, 공공재개발·공공재건축은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을 넘어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진정한 도시정비 모델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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